퇴근 후 혼자 극장에 들어가서, 엔딩 크레디트가 다 올라간 뒤에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 영화가 얼마나 될까요. 저는 이번에 딱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마이클 잭슨의 전기 영화 <마이클>은 '팬이라면 눈물 쏟겠지' 싶었는데, 막상 보고 나니 그 말이 완전히 틀리진 않았지만, 훨씬 더 복잡한 감정이 남았습니다.
혈연빨 아닐까 싶었던 자파 잭슨의 싱크로율
솔직히 캐스팅 소식 들었을 때 반응이 그랬습니다. 마이클 잭슨의 친조카인 자파 잭슨이 주연을 맡는다고 했을 때, "유명인 후광 아닌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거든요. 일반적으로 실존 인물의 가족이 캐스팅되면 외모적 유사성에만 기대는 경우가 많다고 알려져 있으니까요.
그런데 실제로 보니 완전히 달랐습니다. 제 경험상 바이오픽(Biopic)에서 싱크로율이 높다는 평가는 대개 닮은 외모 정도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이오픽이란 실존 인물의 생애를 기반으로 만든 전기 영화를 뜻합니다. 그런데 자파 잭슨은 달랐어요. 팔을 뻗는 각도, 무대에서 뒤를 돌아볼 때의 템포, 수줍게 고개를 숙이며 웃는 그 미소까지. 몸에 배어 있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특히 1983년 모타운 25주년 공연 장면은 극장 전체가 숨을 죽였습니다. 검은 반짝이 자켓을 입고 나와서 문워크(Moonwalk)를 처음 밟는 그 순간, 여기저기서 조용한 탄성이 터져 나왔어요. 문워크란 발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뒤로 미끄러지는 환상적인 댄스 기법으로, 마이클 잭슨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동작입니다. 그 장면을 극장 대형 스크린으로 보면서, 제가 그동안 유튜브 영상으로 수십 번 봤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충격을 받았습니다.
바이오픽이라는 형식이 이 영화에서 작동하는 방식
일반적으로 바이오픽 장르는 위인전처럼 주인공을 신화화하거나, 반대로 스캔들과 몰락에만 집중한다는 비판을 받곤 합니다. 저도 그런 선입견이 있었는데, <마이클>은 그 둘 사이를 꽤 잘 걷고 있었습니다.
안투안 후쿠아 감독은 화려한 무대 장면과 어두운 내면 장면을 번갈아 배치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수만 명이 환호하는 경기장과, 조명이 꺼진 텅 빈 방에 혼자 앉아 있는 마이클. 그 대비가 단순한 연출 기법이 아니라, "우리가 이 사람에게서 무엇을 가져갔는가"라는 질문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그 장면에서 가슴이 꽤 먹먹했습니다.
영화에서 다루는 마이클 잭슨의 생애를 시간 순으로 정리하면 대략 이렇습니다.
- 1960년대 인디애나주 개리 출신, 아버지 조 잭슨의 혹독한 훈육 아래 잭슨 파이브(Jackson 5) 활동 시작
- 퀸시 존스와의 협업을 통한 솔로 전환, 앨범 <오프 더 월> 성공으로 독자적 음악 세계 구축
- <스릴러>, <배드> 앨범으로 팝 역사를 바꾼 전무후무한 상업적·예술적 성취
- 피부 질환과 성형을 둘러싼 언론의 지속적인 왜곡 보도와 사생활 침해
- 네버랜드 건설, 아동 학대 의혹, 법정 공방, 그리고 말년의 고립과 죽음
3시간 가까운 러닝타임에도 이 흐름이 꽤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다만 후반부는 살짝 타이트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워낙 일화가 많은 인물이다 보니 어느 정도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 같습니다.
사운드 퀄리티와 무대 재현, 어떤 상영관을 골라야 하는가
이건 정말 강조하고 싶은 부분입니다. 어릴 때 아버지 차에서 카세트테이프로 듣던 'Man in the Mirror'와 'Beat It'이 극장 대형 스피커로 울려 퍼지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흘렀습니다. 제 경험상 음악 영화는 집에서 스트리밍으로 봐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영화만큼은 그 판단이 완전히 틀렸습니다.
영화에서는 사운드 믹싱(Sound Mixing) 기술을 통해 마이클 잭슨의 원본 보컬과 자파 잭슨의 퍼포먼스를 정교하게 레이어드 했습니다. 사운드 믹싱이란 여러 개의 음원 트랙을 하나의 완성된 사운드로 합치는 후반 작업으로, 영화나 음반에서 청각적 완성도를 결정짓는 핵심 공정입니다. 그 결과물은 '마이클 잭슨이 다시 살아 돌아온 것 같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닐 정도였습니다.
실제로 마이클 잭슨은 생전에 자신의 무대 음향에 극도로 집착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빌보드(Billboard)가 보도한 자료에 따르면, 마이클 잭슨은 콘서트 사운드 세팅을 위해 리허설에서만 수십 시간을 소비하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런 아티스트의 음악을 재현하는 만큼, 이 영화는 무조건 IMAX나 돌비 시네마(Dolby Cinema) 같은 프리미엄 상영관에서 보시길 권합니다. 돌비 시네마란 일반 상영관 대비 향상된 음향 시스템과 고밀도 영상 기술을 결합한 프리미엄 상영 포맷으로, 음악 영화의 몰입감을 극대화합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어폰으로 마이클 잭슨 앨범을 다시 들었는데, 평소에 그냥 흘려듣던 노래들이 완전히 다르게 들렸습니다. 이 영화가 제게 준 가장 큰 선물이 그것이었습니다.
아티스트의 고독, 우리는 그를 얼마나 제대로 봤는가
영화가 끝나고 나서 오래 생각하게 만든 부분은 화려한 무대가 아니었습니다. 마이클 잭슨이 "내 음악으로 세상을 치유하고 싶다"고 말하는 장면들이었습니다. 그 말이 단순한 아티스트적 발언이 아니라, 정말로 치유받지 못했던 한 인간의 고백처럼 들렸거든요.
영화는 피터 팬(Peter Pan) 콤플렉스라는 개념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지만, 네버랜드 목장을 짓고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마이클의 모습에서 그 심리가 읽혔습니다. 피터 팬 콤플렉스란 성인이 되어서도 아이의 심리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유년기로 돌아가고자 하는 심리적 경향을 말합니다. 어릴 때 '보통의 아이'로 살아본 적이 없었던 마이클에게 그것이 일종의 생존 방식이었다는 감독의 시선이 설득력 있게 느껴졌습니다.
일반적으로 마이클 잭슨의 기이한 행동들은 언론에서 가십으로 소비되어 왔지만,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그 시선이 꽤 많이 바뀌었습니다. 롤링스톤(Rolling Stone)이 마이클 잭슨 사망 이후 여러 차례 조명한 것처럼, 그는 음악적으로 인종의 벽을 무너뜨린 혁명가였지만 정작 자신의 삶에서는 단 한 번도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영화는 그 아이러니를 가장 정직하게 담아낸 작품이었습니다.
마이클 잭슨을 어릴 때부터 들어온 세대라면, 이 영화는 눈물과 전율이 동시에 오는 경험이 될 겁니다. 팬이 아니더라도 한 인간이 가진 천재성과 결핍이 어떻게 공존하는지를 가장 밀도 있게 보여주는 음악 영화라는 점에서, 올해 극장에서 볼 영화를 하나 고르라면 저는 주저 없이 이 작품을 선택합니다. 5점 만점에 4.7점. 가능하다면 음향 특별관에서 보시길 강력히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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